최낙환 전 익산교육장과의 일문일답 1942년 익산서 태어나 평생 익산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지역 토박이 익산교육장 끝으로 44년 교직 인생 마무리… 황조근정훈장 수훈 받아 시집 5권·명언 명구 모읍집 발간…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 [인물 포커스] “지역 젊은이들 위해 어른으로서 역할과 도리 다해야”최낙환 전 익산교육장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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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때 슬픔을, 건강할 때 병고를, 사랑할 때 이별을,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해라. 이것이 유비무환이다”
인생살이 팔순의 고개를 넘어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자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평생 교직을 천직으로 삼아 생활을 해오며 익산시 교육장을 끝으로 정년을 마감한 후 현재도 인생은 진행형이라며 노익장을 과시하며 5권의 시집과 ‘삶의 향기’라는 명언 명구 모음집도 낸 엄연한 작가이기도 하다.
겨울 입김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기자와 만나 약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본인의 인생사를 차분히 이야기하는 참 어른의 자태가 경이로울 정도다.
‘인간은 꿈과 희망 속에 내일 일도 모르는 인생 여정을 걷는 것 같다’며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것도 모자라 후배들을 위한 삶의 길라잡이로 하늘이 정해준 날까지 살아가고 싶다는 최낙환 前 익산시교육장을 만난 기자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의 이야기 속에 빠져 들었다.
그는 1942년 익산에서 태어나 익산에서 초·중학교를 다니고 평생 익산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익산 토박이다.
군산사범학교와 방송대 졸업 후 평생 교직생활을 하며 백제 라이온스클럽 3, 4대 회장, 전라북도 태권도협회 고문, 진안과 익산교육지원청 교육장, 익산시 애향운동본부 본부장, 새이리장학회 이사, 사랑의 동산교회 원로장로, 현 익산시 원로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이력도 화려하다.
현재는 (사)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직생활의 공로를 인정받아 황조근정훈장을 수훈 받기도 했다.
또한 최근 들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들려 한 해 동안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신 직원분들에게 감사하다고 금일봉을 쾌척했다는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의 전언도 있다.
다음은 지역의 젊은이들을 위해 지역의 어른으로서 역할과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최낙환 전 교육장과 일문일답이다.
기자: 반갑습니다. 날이 추운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 교육장: 별 말씀을요. 저도 약속한지라 나왔지만 아직 이유를 모른 체 나온지라..
기자: 사실은 거주하시는 아파트에서 그동안 말없이 좋은 일을 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주변 분들이 꼭 취재 한번 해 달라 추천해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최 교육장: 아이고 나이 먹은 노인네가 무슨 일을 한다고 취재까지…. 암튼 말벗이 돼 주신다 생각하고 따스한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를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기자는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정리해 질문지를 써 내려갔다.
![]() ▲아파트 주민이 현수막을 보고 SNS에 남긴 글. © 전북금강일보 |
기자: 소문을 들어보니 자비를 들여서 아파트 내에 좋을 글들을 정기적으로 게시하셨다 들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요?
최 교육장: 아! 이야기하자면 조금 그렇긴 한데 지난 10월 24일이 평생을 함께해 온 아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지 13주년이 되는 날 이였어요.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살아오면서 잘 성장해 어엿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도 고맙지만 해마다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지는 못하더군요.
교직생활 44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인생에 대해 퇴직 후 깨달은 바가 많았고 그리운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한 권의 책으로 채워지더군요.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들을 책으로 엮다보니 내 인생에 대한 삶의 나침판 같은 이야기들이 정리가 되고 그런 내용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 이렇게 됐네요.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요?
최 교육장: 아마 3년 전이었을 겁니다.
과연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많은 생각과 답을 찾으려 노력한 일들이 열매를 맺었고 그러한 글들을 주민들과 공유하려 현수막과 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이웃사랑 人’이라는 닉네임으로 자비를 들여 시작했었죠.
기자: 아! 선생님께서 게시한 현수막을 보고 어느 주민이 ‘행복해지는 법’이라는 리뷰를 SNS에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하고 계시나요?
최 교육장: 아니요. 지금은 하지 않고 있어요. 그 누군가에게는 좋은 말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늙은이의 잔소리와도 같았나 봅니다.
이런 저런 민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이 싫어하는 일이 된 것 같아 지난 10월까지만 하고 접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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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네? 어떤 사연이….
최 교육장: 깊은 이야기는 더 못하겠고 어른이랍시고 꼰대 짓은 하지 말아야 기에 그저 나에게 맞는 옷이라고 남에게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라고 이야기 해두죠.
기자: 알겠습니다. 그럼 화제를 바꿔서 평소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인생철학이나 바람이 있으시다면?
최 교육장: 음, 저는 평소 소망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게 양심 있는 사람의 생각이고 그 아름다운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돼 가는 거지요.
또한 내 나이에 요양원 안가고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이래봬도 매일 8,000보를 걷고 헬스장을 다니며 운동하고 있어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도 도리지만 자식에게 짐이 되는 일들을 만들지 않는 것도 어른이자 부모로서 도리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나는 행복하다 혹은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느끼는 건 30대 때 제 좌우명 덕분인 것 같아요.
![]() ▲최낙환 전 교육장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맡긴 금일봉. © 전북금강일보 |
기자: 무슨 말씀이신지?
최 교육장: 제 나이 30대 때 예절, 의리, 성실이 좌우명이었고 그것을 평생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장에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 같고 더욱 기뻤던 건 제 좌우명을 우리 아들이 상속 받았어요. 하하.
3년 전인가 집에 찾아온 아들이 아버지 좌우명을 상속받고 싶다 해서 그래라 했는데 거기에 ‘겸손’이라는 말을 더해 자기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고맙고 대견하더군요.
잘 자라준 것도 감사하고. 누군가 행복 좀 달라 기도했더니 감사부터 배우라고 했다고 하듯이 저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기자: 평범하지만 삶의 진리 같은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최 교육장: 제 말이 주책없는 노인네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내가 사는 익산을 보면 어른이 없는 것 같아요.
익산이 정치나 사회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면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그 방향 점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가 어려운 것도 사람들이 양심이 없어서도 그러지만 할 말을 해줘야 하는 어른들이 자기 안위만 생각하며 주위 눈치를 보기 때문예요.
그러면 젊은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어른은 어른답게 삶의 길라잡이가 돼 후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책임이 있는 거지요.
기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뿜어져 나오는 어느 어른이 토하는 열변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을 맛보았다.
![]() ▲최낙환 전 교육장이 집필한 저서들. © 전북금강일보 |
인터뷰가 끝난 후 안주머니에서 무언가 작은 봉투를 꺼내며 ‘내 마음을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시 한 편을 적어왔다’고 내민 글은 나이 팔순을 훌쩍 넘은 한 어른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내 인생 내 사랑’
내 인생 멋있게 살았다. 내 인생 사람답게 살았다. 내 인생의 꿈도 소망도 다 이루어 봤다.
스승의 길도 사회적 활동도 믿음과 섬김도 내 됨됨이에 맞추어 다~ 이루어 봤다.
더 바라는 것은 욕심, 욕심이다. 그러기에 내 인생 감사, 감사다.
더욱 더 감사한 것은 훈장을 받은 때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시민의 날 받은 ‘효자표창’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이 주신 부상(副賞)의 축복으로 지금은 아들딸 사남매의 남다른 효도를 받고 있다.
내 나이 팔십대 노인이지만 평생 운동을 벗 삼아 살아 온 보상으로 그 누구보다도 건강, 건강하다.
그러기에 더 자랑스러운 내 인생이다.
그러나 청천벽력에 짝을 잃고 홀로된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허우적거린다.
오늘은 아내의 열 세 번 째 추도일….
오늘 따라 그리움과 보고픔, 외로움과 서글픔에 내 가슴이 사랑아~ 사랑아~ 목메어 부르며
내 사랑, 아내 모습 눈물 속에 그려 본다. (추도일 2024년 10월 24일에 新亭 최낙환 쓰다)
한 장의 종이 위엔 팔순을 훌쩍 넘은 한 남자의 인생이 혹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 그리고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어찌 보면 평범했을지도 모르는 인생의 희노애락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어른’이자 혹은 ‘부모’인 그의 굴곡진 주름 속에서 피어난 환한 미소는 추운 겨울 잘 견디라 마음 담긴 인동초 같은 어르신의 가르침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증효 기자 event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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