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남은 익산 문화예술의거리… 문화예술인들 설자리를 잃고 있다

이증효 기자 | 기사입력 2022/01/10 [20:03]
전시공간 모던갤러리 김연우 관장 인터뷰
지난해 12월 마지막 전시 후 문 닫아… 지자체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 주먹구구식 운영 지적

껍데기만 남은 익산 문화예술의거리… 문화예술인들 설자리를 잃고 있다

전시공간 모던갤러리 김연우 관장 인터뷰
지난해 12월 마지막 전시 후 문 닫아… 지자체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 주먹구구식 운영 지적

이증효 기자 | 입력 : 2022/01/10 [20:03]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본보 기자는 익산 문화예술의거리에 위치한 모던갤러리 김연우 관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감사했고 오늘이 이젠 모던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전시회 마지막 날이다”며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왠지 오늘이 아니면 영영 그 흔적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곧바로 익산문화예술의거리로 향했다.

 

기자가 도착했을 땐 이미 마지막 전시회를 마치고 작품들을 하나둘씩 철수하고 있었다.

 

문안에 들어서니 반가운 얼굴들이 기자를 반긴다. 첫 전시회에 이어 두 번째 전시회를 치루지만 모던갤러리에서 마지막 전시가 돼버린 서강지역아동센터 김혁중 목사와 김연우 관장이 상기된 얼굴로 맞이한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멋쩍은 마음에 “시원섭섭하시겠습니다”라는 인사말에 금방이라도 참았던 눈물을 토해낼 것 같은 김 관장의 모습에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한참을 주변 정리하는 김 관장의 모습을 지켜보며 잠시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맘에 기다렸고 애써 웃음 지으며 “이젠 다 마무리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따스한 차 한 잔을 내어놓는 김연우 관장과 짧은 소회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한때는 익산시의 중심상권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중앙동 일대는 2000년대 신도시 개발과 함께 상권이 조금씩 옮겨 가면서 슬럼화되는 구도심의 위기를 맞았지만 지난 2012년 전라북도가 지역주민들의 문화활동과 젊은이들의 놀이문화 수요에 부응한다는 목적으로 전주, 군산, 익산, 남원 등 4개 지자체를 선정해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 전주와 익산만 진행했다.

 

사업 초기 익산시는 100억대 이상을 투자해 영정통 거리에 각종 예술조형물과 벤치 등을 조성하고 도로를 정비했고 비어 있는 가게를 줄여보겠다며 임차사업자에게 월세를 지원하자 공방과 화실, 카페, 목공소 등 약 15군데 정도 문화예술인들이 입주해 거리가 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단순, 획일화된 운영 관리와 형식적이며 영속성이 없는 문화콘텐츠 부족으로 수많은 예산이 투입됐지만 허름한 건물, 한산한 거리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거리의 목적과 다른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앙상한 거리는 최근에 모 건설사가 주상복합 신축을 위해 문화예술의 거리에 있는 건물들을 매입하며 갈등을 유발했고 결국은 그나마 거리에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모던갤러리가 문을 닫게 됐다.

 

이런 모든 사실의 중심에서 부딪혀 가며 문화예술의 명분을 찾고자 노력해왔던 모던갤러리 김연우 관장의 소회는 남보다 더 깊기에 잠시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김연우 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참으로 아쉬움이 많으시죠? 어떻게든 지켜지기를 바랐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서…

 

어차피 막지 못할 일이었기에 아쉽다는 생각보다 비참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그래도 5월에 쫓겨날 것을 관심 가져주신 주위 분들의 도움 덕에 고객들과 약속을 지키게 돼 이렇게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지금까지 갤러리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셨는지 

 

어쩌면 화가로서 혹은 갤러리 운영자로서가 아닌 소통의 중간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게 주된 운영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공간은 모든 사람들이 소통하기 위해 만나는 공간이길 바랐고 언제든지 찾아와 작품도 감상하고 답답한 마음도 달래고 차도 한 잔 마시고 그저 그림에 관심이 있거나 없거나를 떠나 사람들이 편하게 찾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모 건설업체가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위해 문화예술의 거리에 있는 건물들을 매입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취재하다 모던갤러리 건물도 그 대상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결국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 가지고 계신 생각은? 

 

한마디로 짜인 극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화가 납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신을 가지고 견뎠고 지난 봄에 익산시장님과 문화관광재단 대표님까지 방문하셔 어느 정도 희망이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그런 제가 어리석었죠. 그리고 지금은 그냥 잠시 쉬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냐는 나중에 생각해 보려구요.

 

이번 일로 관장님 개인적으로나 익산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생각에 변화가 많아질 듯합니다. 이런 상황을 겪어보신 관장님의 생각은? 

 

어찌 보면 이젠 익산문화예술의거리는 끝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꼭 제가 이 거리를 떠나서가 아니라 그동안 익산시에서 문화예술의 거리에 수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공들여 가며 조성해 온 게 공염불이 돼가는 모습이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사업주체가 이 거리의 특성과 현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추진해 왔고 거리 활성화를 위한 민·관 간에 그 어떤 소통과 플랜 제시도 없이 그저 일방통행식 업무처리에만 급급해 단발성 보이기식 행사 등으로 본연의 목적을 벗어나 흘러왔기에 이 거리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래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거나 보람을 느끼는 일도 있으셨을텐데

 

보람된 일이라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통이었다고나 할까요? 길을 가다 들린 가족들과 차 한잔 나누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갤러리에 비치된 스케치북과 미술재료를 아이들에게 꺼내주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던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부재중에 길 가던 어떤 분이 방문한 후 장문의 감사 글과 찻값을 방명록 사이에 두고 가셨던 일 등 아무쪼록 어떤 분들이 와도 편안하게 계시다 간다는 말 한마디가 저에겐 가장 큰 보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획을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은 잠시 쉬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기겠죠.

 

제 개인적으로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걸 모던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덕목인지라 앞으로도 지금의 제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들에게 진심이 통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다시 웃으며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오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듯이 앞으로도 본연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겠지요. 다음에는 이런 일들을 겪지 않게 차근차근 잘 준비해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 한마디 해주시죠

 

그동안 모던갤러리가 정말 많은 분들에게 과분하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왔습니다. 찾아주신 분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지금의 모던갤러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바로 모던갤러리를 이어갈 순 없지만 머지않아 더 멋진 공간에서 오픈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약속드립니다. 

 

그간 저희 모던갤러리 잊지 말고 기억해 주세요.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갤러리 내부는 옷을 벗고 흐느끼고 있다.  

 

이제는 거리의 뒤안길로 잊혀 가는 추억이 있는 공간이 되겠지만 문턱이 낮은 갤러리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김연우 관장의 가쁜 숨소리는 거리 곳곳에 스며들어 한때를 풍미하던 미담으로 기억 될지도 모른다.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던 김연우 관장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익산문화예술거리 곳곳을 밝히려 노력했던 분들의 모습을 기억해 달라는 아우성으로 들린다.

/이증효 기자 event00@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