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수필] 개미와 메뚜기

전북금강일보 | 기사입력 2020/09/27 [14:50]
이준구 수필가

[월요수필] 개미와 메뚜기

이준구 수필가

전북금강일보 | 입력 : 2020/09/27 [14:50]

주말마다 손녀와 함께 정혜사에 들른다. 완산칠봉 기슭에 자리 잡은 정혜사는 여승들의 도량이다.

 

‘올 때 반갑고 갈 때면 더 반갑다.’지만 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항상 반갑다.

 

‘할아버지’란 호칭을 얻게 한 보석보다 영롱한 외손녀는 양가에서 본 첫 손녀라 더욱 귀엽다.

 

쌍둥이를 잉태한 둘째딸 내외까지 집에 온 손님은 모두 6명이었다.

 

그러나 아장아장 뛰어다니는 손녀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15개월 된 손녀는 밖으로 나가 개미를 찾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경기전태조어진박물관 처마 밑에서 처음 본 개미를 알게 된 지 한 달이다. 개미라고 알려주었더니 ‘개’를 생략한 ‘미’를 부르며 쫓아 다닌다.

 

집안이나 밖에서 오로지 ‘미’를 찾으려고 쪼그려 앉은 모습은 앙증스럽기 그지 없다. 걷기 시작할 무렵 사 준 ‘삐삐’ 소리가 나는 아기 신발 소리는 개미를 찾는 신호음이다.

 

손녀가 나다니는 공원이나 성당, 절터의 잔디가 자란 공간마다 개미를 찾아 달리는 삐삐 소리의 동선이 날로 늘어 간다.
주말마다 한 번쯤은 개미를 찾아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주말에 만났다가 헤어지는 손녀와 매주 1시간은 개미를 찾아다니는 장소가 정혜사 뜨락이 되었다.

 

오늘은 개미를 찾다가 때늦은 메뚜기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개미만 보았던 아이는 팔짝 뛰는 메뚜기를 보자, 작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

 

메뚜기를 보여주자 요리조리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메뚜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여 주었다.

 

손 위에서 팔짝 뛰어나가는 메뚜기를 보고 까르르 웃었다. 다시 잡아서 웃는 손녀의 손바닥에 메뚜기를 올려줬다.

 

메뚜기가 움찔거리자 질겁하듯 소리를 쳤다. 놀라 뛰어나간 메뚜기에 시선을 두고 고사리손을 뒤로 숨겼다.

 

놀라서 도망치는 메뚜기나 소리를 지르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그 모습이 더 볼만했다.

 

집을 잃은 메뚜기는 도망갔지만 다시 잡았다. 부처님 손아귀의 손오공처럼 메뚜기는 뛰어봐야 다시 잡히는 포로였다.
눈이 부시도록 따스한 10월에 대웅전 앞 잔디밭에는 생존을 건 필사적 도주, 아이의 놀이를 위한 포획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놀잇감, 메뚜기와 이를 잡았다가 놓아주는 고사리손의 게임이었다.

 

도주와 포획이 계속되던 중, 아이는 발로 메뚜기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몇 번의 헛발질 끝에 손녀의 발에 메뚜기가 밟혔다. 느려진 메뚜기는 아이의 손바닥에 올려졌고 도망을 반복하였다.
부상당한 메뚜기는 아기의 발 아래 눈 감짝할 사이에 다시 밟혔고 메뚜기의 배가 터졌다.

 

버둥거리던 메뚜기는 동작을 멈췄다. 죽음을 모르는 아이의 눈에 띄지 않도록 손녀를 안아 잔디 밖으로 나왔다.
정혜사 입구에서 기어 다니는 개미를 보고 다시 발로 밟기 시작했다.

 

장난 삼아 던진 돌멩이에 죽어가는 개구리마냥 길을 잃은 메뚜기는 죽어버렸다. 메뚜기 최후의 동영상이 가족 밴드에 올려졌다. 영상을 본 임산부 대아는 조카가 손을 모으며 말하는 ‘아멘!’을 하라고 댓글을 달았다.

 

말도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살생의 의미를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석양에 집을 나간 새끼를 기다리는 어미 메뚜기는 세월호의 실종자 부모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살생의 공범이 되었고 사체를 남겨둔 채 사천왕문을 빠져나왔다.

 

미필적 고의로 살생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외면하고 사라지면 ‘뺑소니 살인’ 혐의를 받는다.

 

사건 현장을 도망 나온 할아버지 앞에서, ‘미’를 외치며,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하였다.

 

개미를 보고 가리키던 아이가 움직이는 개미만 보면 무조건 밟기를 계속하였다. 돌발적인 어린아이에게 살생유택을알려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찰의 경내에서 삶과 죽음도 찰나에 결정되었다. 삶이란 인생이나 곤충도 마찬가지였다.

 

정혜사 경내에는 열반한 주지스님의 공덕비가 있다. 탈피하던 곤충처럼 정혜사를 나오다가 피안의 다른 세계를 발견하였다. 완산칠봉 아래에서 같은 수돗물과 공기, 햇살을 받으며 살아왔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안행지구의 메뚜기도 스님과 대중이 함께 살아온 터전에서 최후를 다했다.

 

손을 씻던 수돗가에서 티 없이 웃는 눈동자와 미소를 바라보니 내 마음도 씻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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