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수필] 순교자의 발자국

김금례 수필가

전북금강일보 | 기사입력 2020/09/22 [20:45]

[수요수필] 순교자의 발자국

김금례 수필가

전북금강일보 | 입력 : 2020/09/22 [20:45]

가을은 축복의 계절이다.

 

들에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산에서는 나무들의 옷 갈아입는 소리가 들린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성지 순례길에 나섰다.

 

천호성지는 1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교우촌 천호공소의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있다. 천호산에 들어서니 먼저 아담하게 자리 잡은 천호성당과 천호마을이 반겨주었다. 천호마을은 박해 때 ‘다리실 용추네’로 불리던 곳이다.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해 주로 충청도 지방의 신자들이 이곳 산골짜기로 숨어들어와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천호로 변했다고 한다.

 

우리는 103위 순교자들을 상징한 103개 돌 계단에 올랐다.

 

이곳에는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 12월 13일 전주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네 분인 정문호(바로톨로메오,) 이명서(베드로),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 같은 해 8월 28일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아우구스티노),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분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계신다.

 

순교자 현양비석에는 “의를 위하여 군 난을 받는 자는 진복자로다.”라고 새겨졌다. 우리는 숙연한 마음으로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보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순교자들의 임금이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신앙 선조들에게 섭리의 손길을 펴시어 혹독한 형벌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도록 하셨나이다.

 

선조들의 깊은 신앙을 본받아 가족과 이웃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은총으로 도와주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기도를 하고 돌 계단을 내려오는데 전주숲정이에서 순교하신 정문호(바로톨로메오) 성인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소리쳤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늘 우리는 천당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니 즐겁구나!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 가슴이 찡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께 송두리째 바친 순교자의 넋을 기리며 우리는 초남이성지로 향했다. 아담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곳이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1756~1801년)의 생가 터가 자리한 곳이다.

 

유항검은 이곳 초남리에서 1756년 아버지 유동근과 어머니 안동권씨 양반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항검은 천주 교리의 오묘한 진리를 깨닫고 벼슬길을 포기했다고 한다.

 

1784년 늦은 가을 세례를 받고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된 윤지충(바오로)(1759~1791)과 함께 전라도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윤지충과는 이종사촌 간이며 권상연(야고버)과는 외종간이다. 그러기에 자연적으로 유항검은 어머니로부터 인성교육과 천주교 교리를 받을 수 있었다.

 

또 이승훈과 정약전 등을 통해 천주교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1794년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외국인 선교사인 주문보(야고보) (1752~1801) 신부가 유항검의 초청으로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아들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누갈 다)와 평생 동정부부로 살았던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1797년 혼인 뒤 1801년에 신유박해로 치명할 때까지 4년여 간 이곳에서 동정생활을 하며 살았다는 신부님 말씀을 듣고서 4년간 서로의 순결을 지키느라 얼마나 힘드었을까 싶었다.

 

루갈다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고 천길 벼랑 끝에 서있는 듯 했다. 유혹을 이겨내고자 하늘에 간절히 기도했더니 요한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는 순박하고 진솔한 글귀는 우리에게 큰 감동과 영적 울림을 주었다.

 

부부로 살면서 동정을 지켰고, 하나뿐인 목숨을 불꽃처럼 바쳤던 두 사람의 삶을 묵상했다. 이분들의 피로 우리는 하느님을 행복하게 만나고 있음에 감사드렸다. 1801년 신유박해의 회오리는 이곳 초남이에도 거세게 불어닥쳤다.

 

‘사학의 괴수’로 낙인찍힌 유항검은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먼저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됐다.

 

외국인 신부의 입국을 도와 내통했고, 사교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 청원서를 냈다는 죄목으로 대역부도(大逆不道)의 죄를 적용해 머리를 자르고 사지를 자르는 능지처참(陵遲處斬) 형을 언도받았다.

 

그해 10월 24일 남문 밖에서 참수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45세였다. 그리고 부인 신희, 큰아들 유중철, 며느리 이순이, 둘째 아들 유문서, 동생 유관검 등 일가친척들이 처형되고 나이 어린 세 자녀는 유배되는 등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말았다.

 

유항검의 생가 터는 파가저택(破家瀦澤) 되었다. 이들의 시신은 노복과 친지들이 거두어 백 사발에 각각 이름을 적어 넣고 고향인 초남이에 묻지 못하고 들 건너 김제군 재남리 바우배기에 가매장했다고 한다. 1914년 4월 19일 전주 전동본당 초대 주임인 보드네 신부와 신자들은 바우배기에 모셔진 순교자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치명자산으로 모셨다. 7개의 옹기에 각각 유해가 담겨져 있었으며 숯을 담은 채 옹기를 막아 놓아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고 한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아들 유중철(요한),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유문석(요한), 조카 유중석(마태오)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이들의 무덤은 전주 치명자산에 합장으로 모셔져 있다.

 

나는 오늘 순례 여정을 마치면서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주님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다고 했다.

 

인간의 시간은 천년을 살아도 하룻밤 꿈과 같지만 하느님의 시간을 살면 하루를 살아도 그 안에 천년이 숨겨져 있다는 말씀을 되새겨 보았다.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높으신 영광에 불타는 넋이여, 칼 아래 쓰러져 백골은 없어도 푸르른 그 충절 찬란히 살았네!” 순교자 찬가를 부르며 고희가 넘도록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성찰하며 버스에 올랐다.

 

*파가저택 : 국사범에게 내려지는 죄목으로 집에 불을 지르고, 집터는 웅덩이로 만들어 3대를 멸하는 조선 왕조의 가장 큰 형별, 다시는 그집에서 살지 못하도록 흔적을 없애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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