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안 상 현 법사랑위원 전주지역연합회 청소년보호분과 위원

전북금강일보 | 입력 : 2019/12/02 [19:40]

한 남자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 그는 대학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채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고 33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안정을 찾고 한 대형마트의 생선 매장을 담당하게 되었다.

 

한 여자가 있었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했지만 초등교사의 꿈을 이루고자 다시 교대에 들어갔고 학비를 벌기 위해 33살의 노총각 청년이 일하는 대형마트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9살이나 많은 나이, 학벌 차, 너무나 상이한 가정환경 등은 여자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자의 성실함과 진솔함에 반해 여자는 먼저 구애를 했고 남자는 한 여자의 일생을 망칠까봐 계속 거절하고 피했지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었는지 둘은 이내 곧 사랑을 하게 되었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 여기고 삶에 대한 의지를 일찍 놔버렸던 남자는 조건과 환경보다 자신의 사람됨만 보고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여자를 위하여 평생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가혹한 운명은 그들의 행복을 2년도 채 못 가게 만들었다. 여자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남편의 지극한 간호 덕에 삶은 2년여 더 연장되었지만 결국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남자는 아내가 혹시 완치되면 같이 살려고 지어 두었던 지리산의 작은 신혼집에서 6개월을 홀로 보낸 후 지금은 전국을 떠돌며 펜션 관리인 및 일용 잡부로 일하고 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모 방송사 PD가 그에게 물었다. 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혼자 살아가고 있는지, 혹시 다른 여자를 만날 생각은 없는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답한다. “저에게는 그냥 선녀가, 선녀의 옷깃이 바위에 스치는 일이 한번 일어났던 일로 감사해요. 그리고 그런 일이 한 사람에게 또 일어나겠습니까? 안 일어나요. 한번이면 충분해요.”

 

2006년 MBC 휴먼 다큐멘터리 ‘너는 내 운명’ 편으로 방송되어 전국을 울음바다에 빠지게 했던 정창원씨와 서영란씨의 감동적인 실화다.

 

정창원씨는 MBC·동양생명이 공동으로 진행한 공익 캠페인 출연료로 받은 돈 3,000만원 전부를 평소에 소아암 환자들을 돕고 싶어 했던 서영란씨의 뜻을 받들어 아내 이름으로 국립 암센터에 기부했다.

 

현재 그가 가진 재산은 단돈 90만원이 전부이며 돈 욕심, 물질 욕심은 전혀 없다고 한다.

 

아! 이보다 더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 그리고 이들의 삶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삶을 나는 이제껏 보지 못하였다.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에 빠지거나 조그만 시련에도 힘들어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이들이 나온 방송영상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며 참회하고 반성하게 된다. (방송된 지 13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수백 번 넘게 봤지만 매번 새롭고 볼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며 오직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며 쌓아올리는 아름다운 추억과 상대방을 향하여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베푸는 선한 마음 그 자체라는 것을.

 

서영란씨의 명복을 빌며 이들의 삶을 방송물로 만들어준 분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최근 몇 년 간 방송사 채널은 많이 늘었지만 오락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 위주로 주된 편성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

 

자신들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과 연예인들끼리 복불복 게임하는 프로그램이 PD들이 가장 쉽고 빠르게 만들어 내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선행을 실천해가는 이들,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가는 이들, 사람이 사람으로서 진정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보여주어 동시대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더 많이 방송물로 만들어 준다면 이 각박한 사회가 조금이나마 인간미가 넘치는 사회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 인생에도 선녀의 옷깃이 바위에 스치는 일이 있었다. 허나 내 욕심과 독선 및 아집으로 선녀의 옷깃은 바람에 날리어 다른 곳으로 가게 만들어버렸고 나는 남은 인생을 정씨처럼 살아가고자 한다.

 

나의 조건과 환경이 아닌 나 자신만을 보고 사랑해주었고 나의 수많은 단점을 고작 한두 개의 장점으로 따뜻이 덮어주었으며 정작 자신은 나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으면서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행복을 빌며 욕심 없이 살아가리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절대 잊힐 수 없는 그녀와의 추억도 가끔은 내려놓고 소외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며 살아가리라.

 

그래도 1만분의 1의 확률이라도 만약 선녀의 옷깃이 바위에 스치게 되는 날이 다시 내게 온다면 후회 없는 마지막 사랑을 해보고 싶다.

 

서영란씨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시 같은 편지를 공개한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내 생이 짧다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내 생애가 자기로 인해 전혀 초라하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었다고. 당신이 아니었다면 볼품없이 사라졌을 꽃동이가 당신으로 인해 꽃이 피고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고. 고마워요. 처음 만난 그 날부터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아주 뜨거운 마음으로.’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과 미래에 사랑을 꿈꾸고 있는 이들 모두 서영란씨와 정창원씨를 닮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상대방의 조건과 환경, 외면에 이끌리는 만남이 아닌 사람 그 자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해줄 수 있도록.
쉬이 불타오르고 쉬이 사그라지는 단발성 사랑이 아닌 삶과 죽음까지도 초월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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