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소방관 달력

윤 용 구 군산소방서 사정119안전센터 소방사

전북금강일보 | 입력 : 2019/10/09 [17:04]

불과 어제 시작한 듯 보이는 나의 소방생활이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이곳 소방서에서의 시간은 그간 살아왔던 시계의 속도를 훨씬 앞서간다.
업무의 다양성과 교대근무라는 특수성, 이런 모든 것들이 맞물려 시간은 하루의 삶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주주주-야비야비야비’ 이제는 9주기 근무를 하는 소방관들의 ‘월화수목금토일’을 대체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제는 세상 속 일반 달력이 아닌 교대 달력 속에서 살아간다.

 

내 달력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첫 근무의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군산소방서로 첫발을 내디딘 날, 첫 출동은 동물구조 출동이었다.

 

군산교육청 앞에 닭이 돌아다닌다는 신고를 받고 소방차에서 내린 그 순간 소방관으로 사는 삶은 시작되었다.

 

‘자 이제부터 나는 일반인이 아닌 소방관이다’. 자부심과 열정에 가득 찬 새내기 소방관의 마음속 외침, 그렇게 닭과의 한판 대결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닭을 잡아본 경험도 살아있는 닭을 마주친 적도 없는 나에게 그 작은 닭은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고 멘사 회원보다 더 영리한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참을 닭과 씨름하고 지쳐갈 즈음 나는 닭 또한 지쳤을 거라 생각, 함과 동시에 전속력으로 닭에게 질주, 놀란 닭은 건물 입구로 방향을 틀었고 그 순간 닭을 덮쳐 잡을 수가 있었다.

 

첫 성과 속 작은 보람은 나의 소방생활에 자양분이 되었다.

 

이후 수많은 사건 사고에 투입되며 자양분보다 더 큰 경험을 쌓아 나가던 중 그날의 경험은 가히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장미동 7080 화재, 이날의 출동은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늦은 저녁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근무를 서고 있었고 화재 신고 전화 소리와 함께 출동 벨이 울렸다.

 

“유흥업소에 화재 발생” 처음엔 단순한 화재로 생각하였지만, 출동 중 무전기에서는 다수의 사상자를 암시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듯 수많은 사상자가 생사를 알 수 없이 쓰러져 있었고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팀 동료들과 함께 건물 속에 남아있는 요 구조자의 손을 잡기 위해 어두운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음의 무게 만큼이나 무거웠던 요 구조자를 한 명 한 명 건물 밖으로 끄집어내던 순간순간마다 제발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남아있는 힘을 끄집어내어 모든 요 구조자를 구조한 후 화재진압 또한 마무리되었다.
긴 시간 사투를 벌이며 소방공무원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 외에도 작년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고 큰 사건 사고가 잇달았지만 함께 일하는 소방관들의 머리는 누구보다 차갑고 냉철하였고 가슴은 뜨거웠다.

 

이제 또 한 번의 여름을 겪고 가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소방관의 하루는 오늘 다시 시작이다. ‘동풍에 곡식이 병난다.’라는 말이 있다.

 

한참 낟알이 익어 갈 무렵에 때아닌 동풍이 불면 못쓰게 된다는 말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지만 떨어진 기온 탓으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이제 다시 펼쳐야 한다.

 

잇따른 태풍과 안타까운 순직사고, 온갖 악재의 연속이지만 우리의 손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민을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누벼야 할 때 아닌가?

 

마지막으로 소방관은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질 확률은 일반인보다 4~10배 정도 높다고 한다.

 

수십 수백 건의 붉고 뜨거웠던 업무 속 기억, 그로 인한 트라우마와 악몽에 시달리는 소방공무원의 아픔을 씻어줄 올바른 정책이 뒷받침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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