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격물치지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알고 성의정심을 통해 치국평천하로 나아가는 것

김진성 기자 | 기사입력 2024/02/18 [16:18]
경와(敬窩)와 금재(欽齋)의 학문적 위치

[기획] 격물치지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알고 성의정심을 통해 치국평천하로 나아가는 것

경와(敬窩)와 금재(欽齋)의 학문적 위치

김진성 기자 | 입력 : 2024/02/18 [16:18]

▲ 독서기의  © 전북금강일보


본보에서는 열두 번째로 경와(敬窩) 엄명섭(嚴命涉) 선생과 금재(欽齋) 최병심(崔秉心)선생의 학문적 위치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금재선생은 경와 선생의 스승이다. 금재선생은 1874년 고종 11년에 태어나 1957년 작고했다.

 

이번 호에서 두 선생의 학문적 위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도 조선 성리학이 전해져 오면서 그 뿌리를 정확히 아는 이 드물기에 논해 보는 것이다. 

 

조선 성리학은 고려시대 안향(安珦)으로부터 중국에서 고려로 이어져 오게 된다.

 

그 이후 목은(牧隱) 이색(李穡)을 거쳐 퇴계(退溪)학파와 율곡(栗谷)학파로 이어지면서 조선 성리학은 완성된다. 

 

조선 성리학의 도(道)는 계속 이어져 간재(艮齋) 선생에게 내려와 간재학파를 이루게 된다. 간재 선생의 최고의 수제자였던 금재 선생은 도통을 경와 선생에게 잇게 한다. 

 

따라서 초등학생들도 아는 퇴계(退溪) 선생, 율곡(栗谷) 선생의 학문적 경지와 간재, 금재, 경와 선생의 학문적 세계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아직도 금재 선생, 경와 선생이 누구인지 궁금해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두 분 선생이 이 세상에 없으니 경와 선생이 남기신 글로써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와 선생이 금재 선생이 돌아가신 2년 후에 지은 제문을 통해 선생의 학문세계를 논해본다. 

 

 

▲ 敬窩(경와) 嚴命涉(엄명섭)  © 전북금강일보


경와 선생은 금재 선생에 대해 말하기를 “도는 고원(高遠)하여 실행하기 어렵고 백성 중에는 능숙한 이가 적으니, 비로소 부자(夫子 = 공자(孔子)가 성(性)과 천도(天道)는 진실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없다는 자공(子貢)의 말을 알았습니다(伏念道非高遠難行, 而民鮮能之, 始知 夫子性與天道之苟難聞也)”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선생님의 문장은 들을 수 있었으나, 선생님이 성(性)과 천도(天道)를 말하는 것은 들을 수 없었다(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자(朱子)가 논어집주(論語集註 公冶長)에서 말하기를 “문장은 덕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니, 위의(威儀)와 문사(文辭)가 모두 이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경와 선생은 “대개 뜻을 세우고 도를 들음은 설령 더디고 빠른 차이는 있을지라도 국념(局念 국량)과 극기(克己)와 천형(踐形)은 응당 한 곳으로 귀숙(歸宿 자리 잡고 머무름)함이 합당하니, 이는 소자가 학문을 원하는 것이요, 또 선생이 즐겁게 가르치는 일입니다(蓋立志聞道, 縱有遲速之異, 局念克己踐形, 須合歸宿之同處, 此小子之所願學, 亦先生之所樂敎者也)”라고 말했다. 

 

여기에서는 천형(踐形)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야기한다.

 

천형(踐形)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천성(天性)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 금재선생문집습유  © 전북금강일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형색(形色)은 천성이니, 오직 성인이라야 천형할 수 있다”라고 했다.

 

경와 선생은 금재 선생에 대하여 말하기를 “숨김이 없고 말이 없고자 하는 도가 하늘(天象)아 밝게 드리워져 만물을 보여주는 것 같으니, 다행히 소자가 앙찬(仰鑽)하여 쳐다보고 사모하니, 힘쓰고 힘써 온 힘을 다하여 따라가겠습니다(無隱欲無言之道, 如天象昭垂, 而示萬物, 幸小子之仰鑽瞻慕, 而勉勵기及也)”라고 말한다.

 

경와 선생은 여기에서 앙찬(仰鑽)이란 표현을 쓴다. 앙찬(仰鑽)은 《논어》 〈자한(子罕)〉에, 안연(顔淵)이 공자(孔子)의 도에 대해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면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도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에서 나온 말이다. 

 

경와 선생은 금재 선생에 대해 안연이 공자의 도에 비유하듯, 금재 선생을 학문의 깊은 세계에서 우러러본다. 

 

경와 선생은 말하기를 “선생의 식견이 밝음은 해와 달과 빛을 다투며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는 일은 급선무가 되었고, 선생의 기개와 절조(節操)의 고상함은 눈 서리보다 늠름하니, 마음을 다스려 禮를 삼가 그 요체로 삼았다. 덕체(德體)는 천지의 인이라 능히 생생하여 그만두지 못하였고, 기용(器容)은 깊은 바다의 용량이라 절로 깊고 넓어 흔들리지 않았다. 도는 춘추의 정신을 높이니 대의가 찬란하며 열렬하며 학문은 공자(孔子)와 안자(顔子)를 사모하여 지락(至樂)이 간절하고 지극하여 도도하였다(先生識見之明, 則爭乎日月, 而讀書窮理, 爲其先務, 先生氣節之高, 則凜乎霜雪. 而治心謹禮, 爲其切要, 德體天地之仁, 而能生生不已, 器容淵海之量, 而自汪汪不攪. 道尊春秋, 而大義炳炳烈烈, 學慕孔顔, 而至樂肫肫陶陶)”라고 이야기한다.

 

경와 선생은 금재 선생을 학문의 세계를 해와 달과 같이 빛남을 비유했다. 또한 학문의 깊이를 《중용장구》 제32장에 “성인의 그 인덕은 간절하고 지극하여 마치 못처럼 깊고 고요하며 하늘처럼 넓고 크다(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라고 하는 말로 설명했다.

 

경와 선생은 경(敬)에 대한 공부에서도 금재 선생에 대해 말하기를 “공경으로 안을 곧게 하며 동정을 함께 성찰하고 의로 밖을 반듯하게 하며 은현(隱顯)의 간격이 없었습니다. 심(心)과 리(理)가 하나이요, 성(性)의 도(道)가 신묘하게 모이고 충(忠)으로 서(恕)를 행하여 사물과 내가 서로 얻어졌습니다. 인륜에 근본하고 사물의 이치에 명백함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방법입니다. 성의정심(誠意正心)에 시행하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마침은 경제의 도구입니다(敬以直內, 動靜俱省, 義以方外, 隱顯無間. 心與理一, 而性道妙凝, 忠以恕行, 而物吾相得. 本乎人倫, 而明乎物理, 格致之方也. 施於誠正, 而終於治平, 經濟之具也”라고 말했다.

 

선생은 경(敬)사상의 대해서도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을 반듯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말한다. 숨겨져 있어 남이 볼 수 없는 것과 드러나 있어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격물치지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알고 성의정심을 통해 치국평천하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와 선생은 말하기를 “아! 학문은 반드시 진실한 마음 바탕 위에서 각고의 공부를 해야만 가능하다.”고 한 이 말은 선생이 수학(修學)하는 주된 근본이요, 도를 체득하여 작용에 적응하는 공부이니, 진실로 무궁합니다. 이같이 마음에 오로지 힘을 쓰고 평생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도(道)와 학(學)이요, 평생 걱정하는 것은 또 도와 학이었습니다(“嗚呼! 眞實心地, 刻苦工夫.” 是先生修學之主本, 而其體道應用之功, 實無窮矣. 如是專用力於內, 而平生所樂者, 卽爲道與學也. 平生所憂者, 亦爲道與學也)라고 말한다.

 

성인들의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 마음을 진실로 바로잡아야 함은 마땅하다. 道에 나아감은 바로 바른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대학(大學)에서 명명덕(明明德)을 이야기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밝은 덕(德)을 밝히다 보면 선(善)에 이르는 것이 도(道)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김진성 대기자 dong3680@daum.net

 

<다음 이야기는 3월 18일자에 게재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